
마우스 휠을 헛돌리며, 화면 속 사진만 의미 없이 확대했다 줄이기를 반복했습니다. 어젯밤 11시, 며칠 밤을 새우며 기대했던 외주 사진 프로젝트가 결국 무산되었다는 짧은 메일을 받았거든요.
빛이 붉게 타들어가다 이내 서늘한 보랏빛으로 식어버린 사진 속 하늘처럼, 제 마음의 온도도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슴 한가운데가 묵직하게 내려앉아, 들이마신 공기가 끝까지 내려가지 않고 턱 막히더라고요.
열정과 현실의 틈새에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단을 내려와, 뒤늦게 좋아하는 사진과 글을 온전한 제 일로 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좋아서 하던 일이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현실'이 되었을 때, 열정은 자주 밥벌이의 무게 앞턱에 걸려 덜컥 넘어지곤 합니다.
"취미는 취미로 남겨둘 때가 가장 아름답다"던 지인의 말이 귓가를 맴돌아 명치끝이 은근히 뒤틀리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단련해 내는 일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가 되어서도 참 쉽지 않은 과제인가 봅니다. 또 이럽니다, 제가. 메일 한 통에 금세 마음이 쪼그라들어 찌질하게 앓는 꼴이라니요.
꺾인 채로 묵직해진 풍경
답답한 마음에 모니터 속 굽어진 소나무 두 그루의 실루엣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비바람을 견디며 제멋대로 꺾이고 휘어진 뼈대가 위태로우면서도 묘하게 단단해 보입니다. 저 나무들도 처음엔 남들처럼 태양을 향해 수직으로, 꼿꼿하고 매끈하게 뻗어가기를 꿈꾸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꺾이고 굽어진 채로 바위틈을 버텨낸 시간이 모여, 결국 저 텅 빈 밤하늘을 채우는 묵직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허공에 걸린 손톱만 한 초승달도 꽉 찬 보름달이 아닐지언정, 어두운 하늘의 한 귀퉁이를 조용히 밝히고 있네요. 완벽하게 둥글지 않은 저 서툰 빛도, 굽어진 소나무 곁에서는 제법 근사하게 제 몫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걸어가야 하는 이유
포기하고 싶었던 숱한 순간들을 지나, 굳이 이 무거운 카메라를 다시 메고 새벽을 나서는 이유는 거창한 세상의 인정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의 성과가 없더라도, 매일 어둠을 뚫고 풍경을 담아내는 이 서툴고 굽어진 시간들 자체가 이미 제 삶의 단단한 뼈대가 되고 있으니까요. 이런 헛헛한 마음, 어딘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일을 지켜내려 묵묵히 애쓰는 분들이라면 조금은 고개를 끄덕여 주시려나요.
이 길이 맞는지, 제대로 된 타이밍이 언제일지는 솔직히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삐딱하면 삐딱한 대로, 그저 이 어둠 속을 덤덤하게 걸어가 보려 합니다.
책상 위에 놓인 차가운 카메라 바디를 가만히 감싸 쥐어 봅니다.
서늘한 금속의 질감이 굳은살 박인 손끝으로 조용히 스며드네요.
- 촬영 장소: 경북 문경시 호계면 월방산 자락 봉천사 (주차는 사찰 입구)
- 이곳의 특징: '봉황이 깃들어 오랜 세월을 견딘 샘'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아득한 시간의 비바람을 묵묵히 버텨낸 자연의 경건함이 서려 있는 작은 사찰입니다. 깎아지른 바위틈에 제멋대로 굽어지고 꺾인 채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의 실루엣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 뜻대로 꼿꼿하게 뻗어가지 못한 우리네 서툰 삶의 궤적마저 참으로 장엄하고 단단하다는 조용한 위로를 건네받게 되는 치유의 공간입니다.
- 촬영 시간: 오전 05시 54분 (일출 전). 태양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기 직전, 하늘이 가장 서늘한 보랏빛으로 가라앉아 있는 묵직한 시간입니다. 당장 눈앞이 어둡고 막막하더라도, 허공에 걸린 작은 초승달의 빛에 의지해 덤덤하게 여명을 기다리는 깊은 사색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14, 셔터스피드 20초, ISO 500 (Canon 24mm 광각 화각)
- 촬영 팁: 24mm 광각 렌즈를 사용하여 텅 빈 묵직한 여명 하늘과 바위 위의 굽어진 소나무를 한 프레임에 외롭지 않게 담아냈습니다. 특히 **20초라는 긴 장노출(셔터스피드)**을 통해,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빛나는 초승달의 빛과 서늘한 하늘의 색감을 카메라 바디 안에 천천히, 그리고 우직하게 스며들도록 기다린 것이 이 사진이 주는 가장 큰 울림입니다. 조리개를 F14로 깊게 조여, 꺾인 채로 버텨낸 소나무 뼈대의 단단한 질감을 검은 실루엣으로 또렷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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