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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쉬어가는 자리

흔들리는 배꽃 앞, 얕아진 내 호흡 <M-015>

. 뭉툭하고 거칠게 잘려 나간 검은 나뭇가지 옆에서, 눈부시게 맑은 하얀 배꽃 무리가 피어난 풍경. 따뜻한 배경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듯한 꽃잎들이 이유 없는 불안과 생리적 초조함을 담담하게 사색하게 하는 사진입니다.

"딸깍, 스윽." 오전 10시 15분, 전기포트 스위치가 튕겨 올라가는 소리에 어깨가 괜히 움찔했습니다. 빈 머그잔에 믹스 커피를 붓다 말고 손끝이 허공을 맴돌았습니다. 가스 밸브를 열어두고 외출한 사람처럼 명치끝이 뻐근하게 조여오고, 들이마신 공기가 가슴 언저리에서 턱 막혀버렸거든요.

실체 없는 불안의 널뛰기

뚜렷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동네 앞산을 오르다 헛디딘 발걸음 때문인지, 어제 동호회 회원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후회돼서인지 짐작 가는 구석조차 없습니다.

그저 속이 은근히 뒤틀리고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생리적인 감각만이 이 막연한 불안의 실체를 증명할 뿐입니다. 이름표 없는 초조함을 애써 파헤치려 들수록, 불안은 덩치만 키워 제 얕아진 숨통을 더 꽉 조여옵니다. 또 이럽니다, 제가. 세월을 제법 살아내고도 내 감정 하나 마음대로 다루지 못해 엇박자를 냅니다.

검은 흉터와 하얀 숨결

답답한 마음에 모니터를 켜고 며칠 전 렌즈에 담아온 배꽃 사진을 열어보았습니다. 화사한 살구빛 배경을 뒤로한 채, 맑고 투명한 하얀 꽃송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얕은 숨을 쉬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꽃이 피어난 자리는 뭉툭하게 잘려 나간 거무튀튀하고 굵은 나뭇가지 바로 옆이더군요.

단단하게 굳어버린 검은 흉터 곁에 핀 꽃잎들이, 제 눈에는 왠지 모르게 조금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실체 없이 요동치는 제 불안한 호흡이 저 연약한 잎사귀들에 투사되어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얕은 숨결 그대로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크게 심호흡을 해보지만, 호흡에 억지로 집중할수록 오히려 가슴 한가운데가 더 묵직하게 내려앉습니다. 교단에 서서 수많은 아이들의 엉킨 마음을 풀어주던 사람이, 정작 내 안의 불안 앞에서는 캄캄한 미로에 갇힌 기분입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완벽한 평온이 아닌가 봅니다.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호흡이 얕아지면 얕아진 대로 이 뻐근한 감각을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널뛰기를 단숨에 잠재우는 우아한 정답 같은 건, 솔직히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커피 봉지를 마저 뜯어 잔에 털어 넣습니다.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붓습니다. 손바닥에 닿는 머그잔의 온기가 미지근하게 번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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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 장소: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배꽃 과수원 일대 (주차는 밭 인근 도로변에 가능)

  • 이곳의 특징: 상주시의 대표적인 배 생산지(사벌국면, 공검면, 낙동면 일대)로, 봄이 되면 낮고 완만한 구릉지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하얀 배꽃이 장관을 이룹니다. 한때 배꽃 축제가 열렸을 정도로 흐드러진 봄의 절경을 자랑합니다. 사과, 모과와 같은 장미과에 속하는 배꽃은 5장의 순백색 꽃잎 속에 분홍빛 머리를 한 수술(꽃밥)을 품고 있어,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그 섬세하고 수줍은 생명력에 매료되는 힐링 명소입니다.

  • 촬영 시간: 오전 06시 20분 (일출 후). 이른 아침의 차분하고 서늘한 공기 속에서, 밤새 맺힌 이슬을 머금은 하얀 배꽃이 붉은 배경과 대비되며 가장 맑고 위태롭게 피어나는 시간입니다.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6.3, 셔터스피드 1/160s, ISO 100 (Canon 200mm 망원 화각)

  • 촬영 팁: 200mm 망원 렌즈를 사용하여 넓고 복잡한 과수원의 풍경을 과감히 압축하고, 짙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하얀 배꽃 송이들에만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조리개를 F6.3으로 설정해 순백의 꽃잎과 분홍빛 수술의 디테일을 선명하게 살리면서도 붉은 배경은 부드럽게 뭉개어(아웃포커싱),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내면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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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교
빛과 마음이 머문 순간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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