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윽, 툭." 오후 4시 20분, 짙은 그늘이 내려앉은 성주 성밖 맥문동 숲길. 출사를 마치고 카메라 가방 지퍼를 닫으려다, 수첩에 끼워둔 '모나미' 볼펜을 보라색 꽃밭 위로 실수로 떨어뜨렸습니다.
허리를 굽혀 펜을 줍는데, 욱신거리는 무릎 탓인지 명치끝이 뻐근해지며 꽉 막혀있던 한숨이 길게 새어 나오더군요. "아, 진짜 모임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싶다."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혼잣말에 저 스스로도 조금 놀랐습니다.
견뎌내는 무게에 대하여
사실 어젯밤 11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모임 장소를 예약하고, 회원들에게 일일이 안부 전화를 돌리느라 진을 다 뺐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거긴 음식이 짜서 별론데"라며 툭 던지듯 불평하는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평생 교단에서 아이들을 다독이며 굳은살이 단단히 배었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턱 밑까지 숨이 막히며 서운함이 밀려오더라고요.
고개를 들어 앞을 봅니다. 초록색 무거운 이끼를 잔뜩 뒤집어쓴 거대한 고목 한 그루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삐딱하게 누워있습니다. 저 묵직한 세월의 짐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버티는 폼이 왠지 제 모습 같아 눈길이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저 나무가 단단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건지, 아니면 그저 쓰러지지 못해 억지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매일 이어지는 새벽 출사와 묵은 피로로 방전된 제 마음이 투영되어 저 고목마저 애처롭게 보이나 봅니다.
무너지지 않고 삐딱하게 버티는 일
비스듬히 누운 고목 아래로, 보라색 꽃물결을 가르며 자전거를 탄 사람이 무심히 지나갑니다. 휘어진 늙은 나무 아래로 매일 저렇게 각자의 무게를 싣고 묵묵히 페달을 밟으며 지나갔겠죠. 남몰래 서운함을 삼키는 이 헛헛한 마음, 저만 유난스럽게 겪고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솔직히 이 지독한 피로감을 어떻게 털어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스듬히 누워서도 기어이 잎을 틔워내는 저 고목처럼,
오늘 하루를 버텨냅니다.
가방 옆 주머니에서 반쯤 남은 '목캔디'를 꺼내 입에 넣습니다. 매운 박하 향이 텁텁한 입안으로 훅 퍼지네요. 흙 묻은 볼펜을 바지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다시 자박자박 흙길을 걷습니다.
- 촬영 장소: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밖숲
- 이곳의 특징: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중한 생태 자원이자 전통 마을 숲입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59그루의 거대한 왕버들(최고 높이 14m, 가슴직경 190cm)이 짙은 이끼를 두른 채 기괴하고도 신비로운 자태를 뽐냅니다. 예로부터 마을에 닥치는 재앙을 막기 위해 밤나무를 심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왕버들 숲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외부로부터 마을을 아늑하게 보호해 주던 이 숲은, 이제 나무 아래 융단처럼 깔리는 보랏빛 맥문동꽃과 함께 지친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위로를 건네는 공원이 되었습니다.
- 촬영 시간: 오전 06시 41분. 울창한 왕버들 군락 위로 아침 해가 막 떠올랐을 때, 숲의 짙은 그늘 속에 서늘한 공기가 머물며 고목의 거친 질감과 이끼의 색감이 가장 차분하게 살아나는 시간입니다.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5.6, 셔터스피드 1/60s, ISO 640 (Canon 50mm 표준 화각)
- 촬영 팁: 사람의 시선과 가장 편안하게 닮은 50mm 표준 렌즈를 사용하여, 비스듬히 누워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고목과 그 아래를 지나가는 자전거의 묵묵한 풍경을 과장 없이 진실하게 담아냈습니다. 울창한 숲의 이른 아침이라 빛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해 ISO를 640으로 높이고, 셔터스피드를 1/60초로 확보해 흔들림을 방지했습니다. 조리개는 F5.6으로 설정하여 전면의 이끼 낀 나무의 질감을 뚜렷하게 살리면서도, 배경의 맥문동꽃과 자전거의 궤적을 부드럽게 표현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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