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예쁜 하트 모양으로 모아둔 노란 낙엽을 보고도, 굳이 질척이는 흙길로 멀게 돌아 걸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풍경 앞에서 당장 사진을 찍는 대신 스마트폰 전원을 조용히 꺼버린 건, 빈 벤치처럼 덩그러니 혼자가 된 제 모습을 새삼 확인받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잃어버린 나의 템포
가만히 빈 벤치 곁을 서성입니다. 비를 머금은 차가운 나무 의자 위로 붉은 단풍잎 하나가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더군요. '우리'라는 묶음 속에 머무는 동안, 저는 제가 어떤 온도의 공기를 좋아하던 사람인지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상대의 쉼을 방해할까 조심스레 내려놓았던 기타, 주말엔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서랍에 밀어둔 카메라. 누군가의 보폭에 내 걸음을 무작정 맞추다 보니, 정작 내 발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방향을 잃어버렸던 겁니다.
혼자 걷는 빗속의 뒷모습
연못의 하얀 분수대 너머로, 붉은 낙엽 융단 위를 조용히 걸어가는 하얀 우산이 보입니다. 비 내리는 숲길을 오롯이 자기만의 속도로 걷는 저 뒷모습이 꽤 단단해 보입니다.
떨어져 덩그러니 남겨진 저 노란 하트 모양의 낙엽들도, 누군가와 억지로 묶여있지 않고 그 자리에 홀로 머물 때 가장 고요한 풍경이 되나 봅니다.
굳이 누군가와 발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혼자 걷는 이 서늘한 흙길에서 조금씩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이 낯설고 쓸쓸한 홀로서기, 각자의 자리에서 비에 젖은 기억을 털어내며 묵묵히 자기만의 걸음을 내딛고 있을 분들이 분명 어딘가에 계시겠지요.
끊어진 기타 줄을 매며
어제저녁에는 베란다 구석에 방치해두었던 통기타를 꺼내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냈습니다. 오랫동안 안 쳤더니 팽팽하던 현 하나가 툭 하고 끊어져 있더군요. 녹슨 줄을 다 풀어내고 새 줄을 천천히 감아 올리는 동안, 굳어있던 제 헐렁한 일상에도 조금씩 새로운 장력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별의 헛헛함을 단숨에 털어내는 완벽한 방법 같은 건,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굳은살이 다 벗겨져 말랑해진 손끝으로 서툴게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짚어보는 일 정도입니다.
조심스레 기타의 첫 번째 줄을 튕겨봅니다.
'팅-' 하고 울리는 맑고 짧은 파음이 방 안의 정적 속으로 서늘하게 흩어집니다.
- 촬영 장소: 안동시 낙강물길공원 (구 안동폭포공원)
- 이곳의 특징: 안동댐 수력발전소 인근에 자리한 이 숲은, 웅장한 메타세쿼이아와 전나무가 빚어내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 작은 연못과 오솔길, 그리고 비에 젖은 빈 벤치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어 마치 상처 입은 마음을 이 세상의 번잡함에서 잠시 격리시켜 주는 듯한 고요한 쉼터입니다. 누군가와 보폭을 맞추려 애쓰기보다, 오롯이 나만의 템포로 빗소리를 들으며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홀로서기의 공간입니다. 주차장은 입구에 있습니다.
- 촬영 시간: 오전 08시 54분 (일출 후). 비구름에 가려 해는 떴지만 여전히 차분하게 내려앉은 아침입니다. 빛보다 그림자가 더 짙은 이 시간, 홀로 걷는 서늘한 흙길 위에서 내 발끝이 향하는 방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깊은 사색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16, 셔터스피드 1/100s, ISO 400 (Canon 23mm 광각 화각)
- 촬영 팁: 23mm 광각 렌즈를 사용하여 안개가 살짝 내려앉은 연못의 고요함과 분수 너머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하얀 우산의 뒷모습을 한 프레임에 외롭지 않게 담아냈습니다. 조리개를 F16으로 깊게 죄어, 끊어진 기타 줄처럼 앙상해진 나뭇가지의 잎맥부터 빈 벤치 위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단풍잎, 빗물에 젖은 흙길의 거친 질감까지 단 하나도 흐릿하게 넘기지 않고 또렷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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