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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쉬어가는 자리

"오늘 좀 멍하니 있을게요" 연꽃 보며 배운 것 <M-020>

해 질 녘 붉은 노을과 둥근 해를 배경으로 고요하게 피어 있는 분홍색 연꽃 한 송이. 꽃잎을 향해 날아드는 작은 벌과 흐릿하게 보이는 연밥이 어우러져,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춤과 휴식의 가치를 보여주는 평화로운 풍경

오후 6시 40분, 연못가 나무 벤치

"휴우-" 오후 6시 40분, 낡은 나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길게 숨을 뱉습니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느라 거북목이 된 건지 뒷목이 뻐근하게 당겨오네요.

퇴근길,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 싫어서 일부러 공원 쪽으로 돌았습니다. 손목에 찬 '갤럭시 워치'가 "오늘 활동량이 부족합니다"라고 진동을 울리는데, 그냥 무시하고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거든요.

눈앞에는 해 질 녘의 연못이 펼쳐져 있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뒤로하고, 연분홍빛 연꽃 한 송이가 아주 우아하게 피어 있더군요.

바람도 거의 없어서 물결조차 잠잠합니다. 세상이 잠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은 고요함.

평소 같으면 "시간 아깝게 뭐 하는 거야, 집에 가서 밥이나 먹지" 하며 일어났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정적이 나쁘지 않습니다.

벌은 바쁜데, 꽃은 고요하네

가만히 보고 있는데 작은 벌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연꽃으로 날아듭니다. 벌은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데, 정작 그 벌을 받아주는 꽃은 미동도 없습니다. 애써 향기를 뿜으려 힘을 주지도, 벌을 쫓아내려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써 제 몫을 다하는 모습.

이런 생각이 드는 날, 저만은 아닐 것 같아서요. 우리는 늘 저 벌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요받잖아요.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고, 꿀을 모아야 하고, 무언가 실적을 내야만 살아있는 거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 같아서, 쉴 때조차 유튜브를 보거나 자기 계발서를 읽어야 안심이 되는 그런 강박 말이에요.

주말에 침대에 누워 있으면 "이러다 바보 되는 거 아냐?" 싶어서 벌떡 일어납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무능한 것'과 착각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입안을 맴돌다 삼킨 말

이 고요한 풍경을 보며 거창한 문장 하나를 입 밖으로 내뱉어볼까 했습니다. "멈춤이야말로 진정한 전진이다..."

입술 끝까지 차올랐던 그 말을 꿀꺽 삼켰습니다. 전진은 무슨, 아까 팀장님이 보낸 카톡 답장도 깜빡하고 안 보내서 전전긍긍하고 있으면서요.

괜히 있어 보이는 말로 이 순간을 포장하려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저 연꽃이 아름다운 건, 누군가에게 설명할 명언을 남겨서가 아니라 그냥 저녁노을 속에 가만히, 아무 말 없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걸요.

렌즈를 거치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보기로 했습니다. 저 연꽃이 아름다운 건, 좁은 프레임 안에 갇혀서가 아니라 그냥 저녁노을 속에서 어떤 증명도 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걸요.

그래도 하나는 알겠습니다. 저 연꽃이 아름다운 건, 악착같이 피어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그냥 저녁노을 속에 가만히, 아주 천천히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걸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장 큰 일일지도

벌은 꿀을 따고 날아갔습니다. 꽃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고요하게 서 있습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연료가 아닐까요.

스마트폰도 충전할 때는 가만히 놔둬야 고속 충전이 되듯이, 우리 마음도 가만히 내버려 둬야 비로소 차오르는 게 있나 봅니다.

멍하니 있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내일 다시 저 벌처럼 날아오를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편의점 음료수 한 캔의 행복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주변이 어둑해집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습니다. 뭉쳤던 어깨를 툭툭 치며 기지개를 켭니다.

집에 가는 길에 'CU'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나 한 캔 사 가야겠습니다. 샤워 싹 하고,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음료수 마시는 시간. 그게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이 아닐까 싶네요.

벤치에 떨어진 낙엽을 툭 털어냅니다. 오늘 참 조용하고, 느리고, 근데 꽉 찬 저녁이네요.


📷 묵상을 담은 시선

· 촬영 장소: 경북 상주시 이안면 지산리 백련재배단지 (상주 연꽃 명소)

· 촬영 시간: 오후 06시 58분 (지는 해가 연꽃을 비추는 역광의 순간)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5.6, 셔터스피드 1/1000s, ISO 800 (Canon 176mm 망원 화각)

· 이곳의 특징: 수십만 송이의 연꽃이 만개하여 은은한 향기가 온 마을을 감싸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전국의 사진가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이며, 마을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 촬영 팁: 해를 마주 보고 찍는 **'역광(Backlight)'**을 적극 활용하여 연꽃잎의 투명한 질감과 화려한 색감을 극대화했습니다. 1/1000초의 빠른 셔터스피드로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날아드는 벌의 움직임까지 선명하게 잡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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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교
빛과 마음이 머문 순간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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