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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쉬어가는 자리

인생 망한 줄 알았는데, 봉오리는 올라오더라고요 <M-014>

저녁 연못에서 연봉오리 위에 잠시 내려앉은 잠자리, 고요한 자연의 순간을 담은 사진

셔츠 등판이 축축해서

"아, 찝찝해." 오후 4시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편의점에서 산 '레쓰비' 캔커피를 따는데 손이 미끄러웠습니다. 땀이 나서 셔츠가 등에 쩍 달라붙는 그 불쾌한 느낌, 아시죠? 사무실 에어컨 바람을 피해 잠시 나왔는데, 밖은 더운 공기로 꽉 막혀 있네요.

그늘을 찾아 연못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물비린내가 훅 끼쳐 오는데, 물 가장자리에 누군가 마시다 버린 찌그러진 '삼다수' 페트병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더군요. 라벨지는 반쯤 뜯겨나가고, 흙탕물이 묻어 누렇게 변한 플라스틱 덩어리.

평소 같으면 혀를 차며 지나갔을 텐데, 오늘은 발길이 멈췄습니다. 그 볼품없는 쓰레기 바로 옆에, 짙은 초록 잎을 뚫고 올라온 연꽃 봉오리 하나가 보였거든요.

안 어울리는데, 묘하게 짠하네요

쭈그리고 앉아서 그 기묘한 투샷을 봤습니다. 쓰레기와 꽃봉오리. 버려진 페트병은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힘없이 떠다니는데, 그 옆의 봉오리는 아주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더라고요.

둘은 서로 밀어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울리지도 않은 채 그냥 한 물에 담겨 있었습니다.

마치 "야, 옆에 쓰레기가 있든 말든 나는 내 갈 길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찌그러진 페트병이 배경이 되니까, 꽉 다문 저 봉오리의 생명력이 더 독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요즘 제 얘기 같아서 멈칫했습니다.

작년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일이 엎어지고 나서, 제가 딱 저 떠다니는 페트병 꼴이었거든요. 멘탈은 찌그러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세상이라는 흙탕물 위를 정처 없이 떠도는 기분.

'아, 나는 이제 다 끝났구나. 그냥 쓰레기네.' 그렇게 자책하며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감정에도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여줄까요. 다들 꼿꼿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구겨진 채로 둥둥 떠내려가는 그 무력감 말이에요.

써고 보니 헛웃음 나오는  문장들

습관처럼 그럴싸한 말로 이 장면을 포장하려 했습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난 희망...' 적어놓고 보니 헛웃음이 나더군요. 지금 제 상황에선 그런 감상도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고귀한 건 모르겠고, 그냥 좀 독하다 싶었습니다. 환경 탓, 옆에 있는 쓰레기 탓 안 하고, 자기 몫을 해내려는 저 깡다구가 부러웠습니다.

나는 상황이 안 좋아서, 누가 방해해서 못 한다고 핑계만 대고 있었는데, 쟤는 쓰레기 옆에서도 기어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네요.

스팸 문자와 현실 자각

[카카오톡] 지잉-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려 확인해보니 '국제발신' 스팸 문자입니다. "고객님, 해외 결제 승인..."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해외 결제한 일도 없는데 무슨 결제입니까.

다시 물가를 봅니다. 찌그러진 것과 피어나는 것이 뒤섞여 있는 풍경. 우리 삶도 그런 거 아닐까요. 상처받아 찌그러진 마음 한구석에서도, 또다시 무언가는 조용히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거겠죠.

굳이 사라져가는 걸 붙잡으려 애쓰거나, 빨리 좋아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볶아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 봉오리처럼 입 꾹 다물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팡 하고 터질 날이 오겠죠.

빈 깡통 소리가 요란하네요

다 마신 캔커피를 꽉 쥐어 구깁니다. 분리수거통에 던지니 "딸그락" 하고 빈 깡통 소리가 꽤 요란하게 울리네요.

아, 맞다. 4시 반에 모임이 있는데. 얼른 뛰어가야겠습니다. 감성에 젖어 있다가 또 늦게 생겼네요. 꽃이 피든 말든, 일단 오늘 모임은 해야 하니까요.


📷 묵상을 담은 시선

· 촬영 장소: 경북 문경시 신기동 틀모산 못 (틀모산 생태공원)

· 촬영 시간: 오후 4시 23분 (고요함 속에 잠자리가 머문 순간)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13, 셔터스피드 1/100s, ISO 800 (Canon 400mm 초망원 렌즈)

· 이곳의 특징: 아름다운 연꽃 명소이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연못 옆 주차 공간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촬영 팁: 바람이 멈춘 고요한 순간을 포착하여 1/100초로도 흔들림 없는 선명한 잠자리를 담았습니다. 특히 조리개를 F13까지 조여, 뒤에 떠 있는 페트병(환경 오염)이 흐릿하게나마 형태를 드러내게 함으로써 '쓰레기 옆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아이러니'를 주제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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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교
빛과 마음이 머문 순간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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