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이 쉬어가는 자리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 받는 사람들의 비밀 <M-012>

마른 연밥과 신선한 초록 연밥이 함께 촬영된 연꽃 씨방 클로즈업 사진

낡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오늘 아침, 낡은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연못가를 걸었습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멍했거든요. 습관처럼 물가를 내려다보는데, 화려했던 연꽃은 온데간데없고 쭈글쭈글해진 연밥(열매) 하나가 덩그러니 떠 있었습니다.

씨앗이 다 빠져나가서 구멍이 숭숭 뚫린 그 모습이 참 볼품없어 보일 법도 한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텅 비어버린 그 자리가 오히려 묘한 존재감으로 제 마음을 툭 건드렸으니까요.

꽉 차야만 안정적이라는 착각

우리는 흔히 '가득 찬 상태'를 안정이라고 믿잖아요. 통장도, 스케줄 표도, 인간관계도 빈틈없이 빽빽해야 안심이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멍하니 보내는 시간은 죄악 같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로 하루를 꽉 채워야만 직성이 풀렸으니까요.

그런데 저 연밥은 정반대였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 가벼워졌기에, 스스로 무게를 지탱하며 물 위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바람에 살짝 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는 않더군요.

여러분은 혹시 하루라도 무언가로 꽉 채우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던 적 없으신가요? 쉼 없이 달리는 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믿었는데, 어쩌면 우리는 너무 무거워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비어 있다는 건 결핍이 아니라, 물살을 타고 흐를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상태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빈틈이 있어야 볕이 든다

카메라 렌즈를 당겨보니 연밥 표면에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꽉 막혀 있었다면 튕겨 나갔을 빛이, 비어 있는 구멍 사이로 들어와 은근하게 반짝이고 있더군요. 그 장면을 보며 무릎을 쳤습니다.

"아, 빈 곳이 있었기에 빛이 들어오는구나."

사람 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완벽하고 빈틈없는 사람 앞에서는 왠지 숨이 막히잖아요. 실수할까 봐 긴장하게 되고요. 오히려 "나 요즘 좀 힘들어"라며 자신의 구멍 난 자리를 슬쩍 보여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너무 강하지 않아 다가갈 수 있고, 너무 완벽하지 않아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는 사람.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건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빈틈을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요.

애써 채우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촬영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물결에 흔들리는 연밥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요즘 저는 너무 많은 걸 움켜쥐려다 손에 쥐가 날 지경이었거든요. 비어 있는 하루는 실패한 것 같고, 계획대로 안 되면 루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밥은 아무 말 없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잃어도 끝이 아니고, 비워져도 가라앉지 않으며, 텅 빈 자리로 더 따뜻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요.

혹시 오늘 하루, 마음 한구석이 휑하니 뚫린 것 같아 우울하다면, 억지로 채우려 하지 말고 잠시 그대로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라앉는 게 아니라, 지금 가장 가볍게 떠오르는 중일지도 모르니까요.

많이 걸었더니 종아리가 당기네요. 집에 가는 길에 시원한 드링커나 하나 사서 들어가야겠습니다.


📷 묵상을 담은 시선

· 촬영 장소: 경북 문경시 신기동 틀모산 못 (틀모산 생태공원)

· 촬영 시간: 오전 06시 36분 (따스한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시간)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8, 셔터스피드 1/500s, ISO 400 (Canon 300mm 망원 렌즈)

· 이곳의 특징: 고즈넉한 시골 정취를 품은 연꽃 명소로, 수면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 좋은 힐링 산책로입니다. 연못 바로 옆에 주차 공간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납니다.

· 촬영 팁: 300mm 망원 렌즈로 배경을 단순하게 정리하여 주제를 부각시켰습니다. 특히 하나의 연밥 안에서 공존하는 '말라가는 갈색 부분'과 '싱그러운 연두색 부분'의 극적인 색감 대비를 포착하여, 한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순환과 세월의 흐름을 질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반응형
김정교
빛과 마음이 머문 순간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 저작권 안내
이 블로그의 모든 사진과 글은 작성자의 창작물입니다.
무단 복사, 재업로드, 2차 가공을 금합니다.
사용을 원하실 경우 댓글 또는 메일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 ateach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