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오늘 아침, 낡은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연못가를 걸었습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멍했거든요. 습관처럼 물가를 내려다보는데, 화려했던 연꽃은 온데간데없고 쭈글쭈글해진 연밥(열매) 하나가 덩그러니 떠 있었습니다.
씨앗이 다 빠져나가서 구멍이 숭숭 뚫린 그 모습이 참 볼품없어 보일 법도 한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텅 비어버린 그 자리가 오히려 묘한 존재감으로 제 마음을 툭 건드렸으니까요.
꽉 차야만 안정적이라는 착각
우리는 흔히 '가득 찬 상태'를 안정이라고 믿잖아요. 통장도, 스케줄 표도, 인간관계도 빈틈없이 빽빽해야 안심이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멍하니 보내는 시간은 죄악 같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로 하루를 꽉 채워야만 직성이 풀렸으니까요.
그런데 저 연밥은 정반대였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 가벼워졌기에, 스스로 무게를 지탱하며 물 위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바람에 살짝 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는 않더군요.
여러분은 혹시 하루라도 무언가로 꽉 채우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던 적 없으신가요? 쉼 없이 달리는 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믿었는데, 어쩌면 우리는 너무 무거워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비어 있다는 건 결핍이 아니라, 물살을 타고 흐를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상태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빈틈이 있어야 볕이 든다
카메라 렌즈를 당겨보니 연밥 표면에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꽉 막혀 있었다면 튕겨 나갔을 빛이, 비어 있는 구멍 사이로 들어와 은근하게 반짝이고 있더군요. 그 장면을 보며 무릎을 쳤습니다.
"아, 빈 곳이 있었기에 빛이 들어오는구나."
사람 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완벽하고 빈틈없는 사람 앞에서는 왠지 숨이 막히잖아요. 실수할까 봐 긴장하게 되고요. 오히려 "나 요즘 좀 힘들어"라며 자신의 구멍 난 자리를 슬쩍 보여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너무 강하지 않아 다가갈 수 있고, 너무 완벽하지 않아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는 사람.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건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빈틈을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요.
애써 채우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촬영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물결에 흔들리는 연밥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요즘 저는 너무 많은 걸 움켜쥐려다 손에 쥐가 날 지경이었거든요. 비어 있는 하루는 실패한 것 같고, 계획대로 안 되면 루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밥은 아무 말 없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잃어도 끝이 아니고, 비워져도 가라앉지 않으며, 텅 빈 자리로 더 따뜻한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요.
혹시 오늘 하루, 마음 한구석이 휑하니 뚫린 것 같아 우울하다면, 억지로 채우려 하지 말고 잠시 그대로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라앉는 게 아니라, 지금 가장 가볍게 떠오르는 중일지도 모르니까요.
많이 걸었더니 종아리가 당기네요. 집에 가는 길에 시원한 드링커나 하나 사서 들어가야겠습니다.
📷 묵상을 담은 시선
· 촬영 장소: 경북 문경시 신기동 틀모산 못 (틀모산 생태공원)
· 촬영 시간: 오전 06시 36분 (따스한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시간)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8, 셔터스피드 1/500s, ISO 400 (Canon 300mm 망원 렌즈)
· 이곳의 특징: 고즈넉한 시골 정취를 품은 연꽃 명소로, 수면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 좋은 힐링 산책로입니다. 연못 바로 옆에 주차 공간이 있어 접근성도 뛰어납니다.
· 촬영 팁: 300mm 망원 렌즈로 배경을 단순하게 정리하여 주제를 부각시켰습니다. 특히 하나의 연밥 안에서 공존하는 '말라가는 갈색 부분'과 '싱그러운 연두색 부분'의 극적인 색감 대비를 포착하여, 한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순환과 세월의 흐름을 질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마음이 쉬어가는 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너는 왜 바위처럼 구니" 나에게만 유독 까칠한 당신에게<M-015> (0) | 2026.02.16 |
|---|---|
| 인생 망한 줄 알았는데, 봉오리는 올라오더라고요 <M-014> (0) | 2026.02.09 |
| "헐, 두부 사는 걸 깜빡했다" 백로 보다가 멍 때린 하루<M-013> (0) | 2026.02.04 |
| 혼자만의 시간은 외로움이 아니라 충전입니다 <M-011> (0) | 2026.01.26 |
|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성공했습니다<M-009> (0) | 2026.01.19 |
이 블로그의 모든 사진과 글은 작성자의 창작물입니다.
무단 복사, 재업로드, 2차 가공을 금합니다.
사용을 원하실 경우 댓글 또는 메일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 ateach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