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능선을 서성이며
망원렌즈의 차가운 금속성이 손끝에 닿는 느낌이 좋아 아침 8시부터 산 능선을 서성였습니다. 뷰파인더 너머로 백로 한 마리가 잡히더군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녀석의 부리에는 새끼들을 위해 잡은 먹이가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성공했구나.'
둥지 가까이 오자 녀석이 급격히 속도를 줄였습니다. 날개를 양쪽으로 활짝 펼치고, 긴 다리를 뻗어 공중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그 모습. 셔터를 누르는 순간,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날개깃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그 짧은 착지의 순간을 보는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더군요. 돌아온다는 건,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게 아니라 그곳에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구나, 하고요.
빈손으로 현관문을 열 때의 무게
백로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둥지 아래에서 희미하게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거든요. 녀석이 매일 새벽 그 고단한 날갯짓을 반복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사실 셔터를 누르다 말고 잠시 멈칫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 전쟁을 치르고,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우리네 삶이랑 너무 닮아 보여서요. 그런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했는데, 정작 내 손에 쥐어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허탈함 말이에요.
이런 마음… 저만은 아닐 것 같죠. 둥지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보다,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그런 저녁들. 내가 들고 가는 게 고작 이 피곤한 몸뚱이 하나뿐인 것 같아 가족들에게 미안해지는 순간들. 요즘 제 하루가 꼭 그렇거든요.
반복되는 비행이 만드는 기적
그런데 이 백로를 보니까 묘한 위로가 됐습니다. 백로의 일상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날아가고, 먹이를 구하고, 다시 돌아오는 무한 반복. 하지만 그 지루한 반복이 모여 가족을 살리고 둥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착지하려는 백로의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익숙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늘 돌아오던 자리니까요. 조심스럽지만 거침없이 몸을 낮추는 그 모습에서 깨달았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 삶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걸요.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가 가져온 작은 것을 기쁘게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 비록 오늘 내 손이 조금 비어 있을지라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내일 다시 날아오를 힘을 얻는 게 아닐까요.
우리의 비행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백로는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비행을 할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죠. 또 다른 출근, 또 다른 수고, 반복되는 일상. 하지만 그 모든 비행과 착지의 순간들이 모여 결국 '가족'이라는, '삶'이라는 하나의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렌즈를 내리고 장비를 챙기니 어깨가 뻐근하네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에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웃으면서 문을 열어야겠습니다.
"나 왔어!" 하고 말이죠. 얼른 들어가 쉬어야 겠네요.
📷 묵상을 담은 시선
· 촬영 장소: 경북 경주시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경주) 뒤편 숲 백로 서식지
· 촬영 시간: 오전 08시 30분 (백로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침)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5.6, 셔터스피드 1/2000s, ISO 320 (Canon 400mm 초망원 렌즈)
· 이곳의 특징: 백로가 둥지를 튼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의 자연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청정 환경의 증거입니다. 도심과 가까운 캠퍼스 숲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으며, 교내의 넓은 주차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촬영 팁: 1/2000초의 매우 빠른 셔터스피드를 확보하여, 백로의 역동적인 날갯짓과 찰나의 순간을 흔들림 없이 선명하게 포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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