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이 쉬어가는 자리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와 외롭고 우울할 때, 묵묵히 길을 내어주는 소나무처럼 <M-011>

짙은 물안개가 낀 금당실 숲길, 굽은 소나무들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사람의 뒷모습. 아이의 홀로서기를 묵묵히 응원하며 배경이 되어주는 따뜻한 부모의 마음을 담은 숲속 풍경입니다

 

오전 8시 40분, 축축한 렌즈를 닦으며

"후우-" 셔츠 끝자락으로 카메라 뷰파인더를 벅벅 문지릅니다. 오전 8시 40분, 금당실 숲길에는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차가운 습기가 들어차는 기분입니다.

삼각대를 펴놓고 멍하니 숲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 자전거 한 대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옵니다. 분홍색 옷을 입은 라이더가 구불구불한 소나무 사이로 난 흙길을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고 있더군요.

순간, 셔터를 누르려던 검지가 허공에서 멈칫했습니다. 안개 속으로 점점 멀어지는 저 뒷모습이, 문득 오래전 제 품을 벗어나려던 아이의 앳된 뒷모습과 너무 닮아 보여서요.

이제 손잡지 않아도 갈 수 있어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등굣길 횡단보도 앞에서 아이는 제 손을 슬그머니 놓았습니다. "아빠, 나 이제 혼자 건널 수 있어. 애들이 봐."

그 말이 대견하면서도, 텅 비어버린 제 손바닥이 왜 그리 썰렁하던지요. 섭섭함이라고 하기엔 유치하고, 기특함이라고 하기엔 조금 시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명치 끝에 걸려 내려가질 않았습니다.

뷰파인더 속 자전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갑니다. 울퉁불퉁한 흙길이라 휘청거릴 법도 한데,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등이 제법 단단해 보입니다.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아이가 내 품을 벗어나려 할 때 느끼는 그 묘한 상실감.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그 서운함 말입니다.

나무처럼 서 있어야 하는 시간

가방 옆구리에 꽂아둔 생수를 꺼내 한 모금 마십니다. 찬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니 정신이 좀 드네요.

다시 숲을 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숲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휘어져 있습니다. 곧게 뻗은 나무 하나 없이 제멋대로 구부러졌지만, 그 덕분에 자전거가 지나갈 수 있는 근사한 터널이 만들어졌더군요.

나무들은 자전거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앞을 막아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쫓아가서 잡아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자리에 굳건히 뿌리 박고 서서, 자전거가 안개 속으로 무사히 사라질 때까지 길을 열어줄 뿐입니다.

어쩌면 진짜 사랑은, 쫓아가서 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길의 배경이 되어 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혼자서 균형을 잡고 달리는 것이 아이에게는 더 큰 세상일 테니까요. 섭섭해할 게 아니라,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빈손으로 박수를 쳐줘야 할 때가 오는 것이겠지요.

치킨과 둔탁한 셔터 소리

자전거가 안개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사진에 찍힌 건 흐릿한 뒷모습뿐이지만, 지우지 않고 남겨두기로 합니다.

오늘 저녁엔 모처럼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한 통 넣어야겠습니다. 혼자서 인생의 페달을 밟고 나아가는 그 힘을 멀리서 응원하면서요. 안개 속이라도 길은 분명히 이어져 있으니까요.

카메라 전원을 끕니다. '딸각' 하는 둔탁한 소리가 축축한 숲의 정적 속으로 조용히 흩어집니다.

더보기

· 촬영 장소: 경북 예천군 금당실 전통마을 (용문면 상금곡리)

· 이곳의 특징: 조선 시대 《정감록》에서 전쟁과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꼽은 역사 깊은 전통 마을입니다. 세월을 머금은 고즈넉한 돌담길과 한옥, 그리고 하늘을 향해 뻗은 천연기념물 송림이 경이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고택 숙박 등 전통 한옥 체험이 가능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좋은 힐링 명소이며,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은 솔밭 바로 옆에 편리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 촬영 시간: 오전 08시 43분 아침 햇살이 숲을 완전히 밝히기 전, 짙은 안개가 굽이치는 소나무 사이로 신비롭게 스며들어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완벽한 고요와 평안을 선사하는 시간입니다.

· 카메라 설정: 조리개 F18, 셔터스피드 1/125s, ISO 800 (Canon 80mm 화각)

· 촬영 팁: 빽빽한 소나무 군락의 웅장함과 안개의 층을 프레임 전체에 선명하게 담아내기 위해 조리개를 F18까지 깊게 조였습니다(팬포커스). 조리개를 조여 부족해진 빛은 ISO를 800으로 높여 보완하였고, 안개 속 숲길을 따라 멀어지는 자전거의 여유로운 뒷모습을 1/125초로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포착해 냈습니다.

 

 

반응형
김정교
빛과 마음이 머문 순간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 저작권 안내
이 블로그의 모든 사진과 글은 작성자의 창작물입니다.
무단 복사, 재업로드, 2차 가공을 금합니다.
사용을 원하실 경우 댓글 또는 메일로 먼저 연락해 주세요. ateacher@naver.com